2부: 길 위에서
그 남자와의 짧은 대화는 생각보다 큰 여운을 남겼다. “커리어 코칭 전문가라….” 지환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손에 든 명함을 들었다 놨다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은 참 다양한 일을 만들어 내는구나 싶었다. 그는 커피 약속을 잡을까 고민하다, '잃을 게 뭐가 있겠어?' 하는 마음으로 명함에 적힌 번호를 눌렀다.
그로부터 이틀 뒤, 작은 카페의 구석 자리에서 다시 만난 남자는 여유롭고 따뜻한 미소로 지환을 맞이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는 단순한 코치가 아니었다. 과거 IT 스타트업에서 성공을 거두고 현재는 비영리 단체에서 은퇴 후 재취업 및 창업을 돕는 일을 하고 있었다.
“지환님께는 지금 변화가 필요합니다. 익숙한 곳에서 벗어날 용기가요.”
남자의 말은 차분했지만, 지환의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곳이라….” 지환은 천천히 되뇌었다. “제가 30년을 영어를 가르쳐 왔습니다. 그 외엔 아무것도 몰라요. 뭘 할 수 있을지조차 모르겠는데요?”
“그럼, 뭘 하고 싶으세요?” 남자의 질문은 단순했지만 예리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지환은 고개를 들고 창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뭔가 의미 있는 일을요.”
남자는 그 대답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우리가 바로 그 방향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는 테이블 위에 작은 노트를 꺼내 펼쳤다.
“지환님, 영어 강사로 일하시면서 가장 보람찼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지환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아이들이 시험 점수를 잘 받아왔을 때도 좋았지만, 오히려 자신감을 얻고 밝아진 모습을 볼 때가 더 기뻤던 것 같아요. 제가 가르친 영어가 아니라, 그들이 발견한 스스로의 가능성이랄까요.”
그 대답을 들은 남자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이건 어떠세요?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주는, 혹은 그들의 가능성을 찾아주는 일. 꼭 영어가 아니라도요.”
“그게… 가능한 일일까요?”
“가능하지 않다면, 제가 여기 있을 이유도 없겠죠.”
남자는 곧 자신이 주최하는 워크숍을 소개했다. 그것은 단순한 창업 세미나가 아니었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끄집어내고, 자기 자신을 다시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는 프로그램이었다.
“다음 주말입니다. 와서 한 번 경험해 보세요. 강의처럼 딱딱하지 않아요. 편하게 오시면 됩니다.”
지환은 약간의 의심과 동시에 희미한 기대감을 품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실패한 과거를 붙잡는 대신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할 용기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며칠 뒤, 그는 워크숍이 열리는 장소로 향했다. 낡은 운동화에 캐주얼한 차림으로 걸음을 옮기던 지환의 눈앞에 펼쳐진 곳은 생각보다 따뜻하고 생기 넘치는 분위기였다. 벽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공유한 메모와 사진들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자신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모든 끝은 새로운 시작을 품고 있다는 사실도.
(3부에서 계속)